미국 및 유럽연합(EU)이 중국과 벌이고 있는 ‘섬유전쟁’의 불똥이 우리나라 섬유·의류업체로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EU는 조만간 중국산 의류 및 섬유제품에 대해 수입쿼터제를 적용하거나 긴급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의 직전 단계인 ‘공식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04년 말 현재 1500여에 달하는 중국 진출 우리 섬유·의류업체는 졸지에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한국 상표이지만 중국에서 생산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도 중국산이라며 수입량을 제한할 경우 우리 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섬유·의류기업의 대중국 투자 건수는 전체 해외투자 건수(2332건)의 64.2%인 1497건, 투자액은 전체(10억1600만달러)의 39.0%인 3억9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아상역 심철식 이사는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만큼 장기적으로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낮춰야 할 것”이라며 “섬유전쟁에 대한 즉각 대응이 힘든 소규모 기업이나 중국 생산 비중이 큰 기업의 타격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기업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EU가 한국 등 주변국가를 상대로 중국산 섬유제품의 우회·편법수출 감시를 엄격히 할 경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솔섬유 관계자는 “미국과 EU가 원산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할 경우 업무량과 비용이 늘어나 영업에 부담이 된다”며 “한국 세관이 중국산 섬유를 철저히 단속하는 것 외에 기업에서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섬유 수출량이 감소한다 해도 고품질·고가의 한국산이 저가 중국산을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반사이익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내기업들은 중국과 미국·EU 간 섬유전쟁으로 ‘잃는 것은 많고, 얻는 것은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류산업협회 고재길 기획조사팀 과장은 “중국산 섬유 수입상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는 있겠지만 전체 물량은 미미할 것”이라며 “생산공장을 동남아나 중남미 등에도 지어 다양하게 진출하는 등의 생산 다각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